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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미하엘 엔데 <모모> 리뷰 📔 뿌연 연기 속에서 꽃을 피우는 법

by 솔립기록 2021. 10. 1.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모모는 어린 여자아이지만, 누구의 이야기든 잘 경청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모모의 능력으로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던 중,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이 찾아오지 않게 되는 걸 알게 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회색 신사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시간을 저축해주는 척하며 시간을 빼앗는다. 사람들은 모모를 만난다는 것이 시간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모모를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웃지도 않고, 대화하지도 않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모모가 회색신사의 입방정으로 그들의 음모를 알게 되고, 그들은 음모가 밝혀질 것이 두려워 이를 막기 위해 모모를 쫓는다. 그러나 모모는 거북의 도움으로 시간을 관리하는 호라 박사의 집에 도착하게 된다. 호라 박사는 모모에게 큰 미션을 준다. 본인의 힘으로 그들이 얼려놓은 시간의 꽃을 녹이라는 것이다. 회색 신사들은 모모를 필사적으로 뒤쫓았지만, 그들끼리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사라져버린다. 거북의 조력과 함께 모모는 무사히 냉동 창고에 도착해서 꽃을 녹였다. 꽃이 녹자 모든 사람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고, 남은 회색 신사는 투명해져 사라졌다.

 


 

모모가 살고 있는 곳은 시골, 회색 신사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은 도시다. 여느 문학처럼 이 곳은 대비되어 시골은 따뜻하고, 순수하며 여유로운 삶을 대표하고, 도시는 삭막하고 타락되어져 재빠르게 돌아가는 삶을 대표한다. 책에서는 시골과 도시를 비유로 들어 독자가 좀 더 쉽게 와닿을 수 있도록 한다.

내 생각엔 우리 마음엔 시골과 도시 둘 다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어느 날은 시골에서 살고, 어느 날은 도시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내가 마음의 여유가 있고,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그런 날이라면 그 날은 시골에 있는 것이다. 반대로 다람쥐가 쳇바퀴에 구르는 것처럼 아주 바쁘게 돌아가는 날이면 그 날은 도시에 있는 것이다. 물론 도시라고 해서 다 삭막한 것도 아니고, 시골이라고 해서 다 따뜻한 것은 아니다. 책에서 표현하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 있다고 해서 다 모모가 아니고, 도시에 있다고 해서 다 회색 신사는 아니다. 모모는 남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는 능력이 있다. 책에서 묘사되기를,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잘 들어준다는 것이다. 또한 직접 해결책을 내주진 않지만 모모 앞에서 보따리 장수가 짐 풀 듯이 이야기를 쏟아부으면 스스로 문제에 대한 답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런 모모의 능력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청이란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고만 해서 경청이 아니라 남의 일을 내가 겪는 것처럼 들어야 한다. 그렇게 경청이 되어야 상대에 대한 공감이 된다. 경청 능력이라는 모모가 가진 힘이 대단해서 모모의 나이, 행색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으러 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경청, 공감 능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나 자신은 누구나 나를 반가워하며 찾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모모처럼 나이, 행색, 처지와는 전혀 관련 없이 오로지 그 능력만으로 말이다.

 

 

 

한편 회색 신사가 뜻하는 것을 뭐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도둑들이며 사람 마음 속에 존재하는 시간의 꽃으로 시가를 만들어 피운다. 그 시가가 만들어낸 뿌연 연기는 도시 전체를 뒤덮어 사람들을 더욱 바삐 만든다. 그들은 ‘경쟁’이 아닐까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해 경쟁,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경쟁, 좋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경쟁 등등이다. 경쟁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경쟁에서 이긴다면 물질적으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쟁에선 우리가 잃어버린 활기가 있다. 회색 신사들은 ‘시간 낭비하지 마라.’며 시간을 빼앗아 버린다. 시간을 빼앗는 것은 곧 활기를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은 무조건 일만 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화도, 웃음도, 사랑도 없이.

 

 

우리는 진짜 시간을 뺏긴 건 아니지만, 시간을 뺏긴 것처럼 살아갈 때가 종종 있다. 일에 집중을 하다가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지?”라고 말이다. 갑자기 <유퀴즈>에서 봤던 말이 떠오른다. “저렇게 갓난 아이가 있는데, 난 그 갓난 아이를 버려두고 일하러 가야 한다.” 이런 느낌의 말이었다. 내 아이를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일을 위해선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모순이다. 궁극적으로는 내 아이를 위한 일이 맞지만, 일하러 가는 그 순간은 내 아이를 위한 순간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이 현실은 냉혹하다. 당장 며칠만 자리를 비워도 내 책상이 사라진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슬프게도 아이를 두고 출근해야 하는 것이다.

주변을 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린다면 멈춰서 잠시 생각해보자.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굳이 오늘 하루, 단 몇 시간만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을 위해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부모님과의 대화, 몇 달 동안 연락 안 한 친구의 안부 묻기, 아이와 놀아주기 등등. 회색 신사는 후에 시간을 배로 쳐서 입금해주겠다고 했지만, 지금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은 다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미래에는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판은 20세기 말에 나왔다. 20여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름 공감하는 이유는 별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해져만 가는 경쟁 속에서 각자 진정한 목표를 잃어버리게 회색 신사들이 시가의 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다. 담배 냄새를 맡으면 인상을 찌푸리듯이 우리는 여유롭지 못한 삶에서 인상을 계속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모모처럼 경청 능력을 키우고, 잠깐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본다면 회색 빛깔 뿌연 연기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런 꽃들이 더더욱 많아진다면 연기는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모모가 시간의 꽃들을 녹여서 시가 연기가 사라졌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