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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영화 리뷰]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 🎬 우리의 불꽃은 그냥 살아가는 것

by 솔립기록 2021. 10. 15.

줄거리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는 꿈에 그리던 최고의 밴드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게 된 그 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탄생 전 영혼들이 멘토와 함께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면 지구 통행증을 발급하는 ‘태어나기 전 세상’. ‘조’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시니컬한 영혼 ‘22’의 멘토가 된다.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도 멘토되길 포기한 영혼 ‘22’, 꿈의 무대에 서려면 ‘22’의 지구 통행증이 필요한 ‘조’. 그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여느 때처럼 중학교 음악 비정규직 교사로 일하던 조에게 너무나도 좋은 일이 하루에 2가지나 일어났다.

하나는 정규직 교사로 전환된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토록 꿈꿔왔던 도로테아 밴드와 재즈클럽에서 연주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 교사로 전환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의 표정이 마냥 좋지가 않다.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은 정말 좋지만, '재즈 라이프'를 추구하던 조에게 음악 교사의 길이 맞았을까?

잠깐의 리허설을 통해 조의 실력을 밴드에게 인정받게 되고, 그날 오후 7시에 공연을 하게됐다. 조가 이토록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코 음악의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연습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맨홀에 빠져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 조. 죽음의 문턱 앞에서 영혼의 모습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아래로 달리고 달리다가 '태어나기 전의 세상'인 '유 세미나'에 빠지게 된다.

 

 

이 곳에서 신분을 속이고 태어나기 전의 영혼의 멘토가 되어 영혼이 지구 통행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구 통행권 중에 가장 핵심인 '불꽃'. 불꽃은 내가 지향하는, 내가 목표하는 가장 가치있는 일을 뜻했다.

조에게는 그 불꽃이 '피아노'라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의 멘티인 22는 불꽃을 찾지 못하고 아주 긴 시간 동안 이 곳에 머물러 있었다. 지구는 지루하고,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며 조소했다.

이 세상에서 멘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의미했다. 완전히 저 먼 곳으로 가기 전에, 멘티들에게 세상에 대해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즉, 조는 멘토 역할이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지구로 가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지구 통행권'을 몸에 지녀야 했다.

조와 22는 일종의 거래를 한다. 22가 가치있는 일을 찾아 지구통행권이 완성되면, 그 지구통행권을 조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22에게 불꽃을 발견하리란 쉽지 않았다.

 

티격태격하다가 이곳의 숨겨진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무아지경의 상태에 놓인 사람들. 이 영화에서 말하는 무아지경은 마치 어딘가로 보내진 것 같은, 육체와 영혼 사이의 공간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 공간을 돌아다니는 신비주의자들을 만난다. 이 사람들은 지구의 길 잃은 영혼들이 길을 찾게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이 공간에서는 검은 모래로 뒤덮여서 돌아다니는 가엾은 영혼이 있다.

어떤 이들은 불안과 집착을 해결 못 해서 길을 잃고 삶과 단절되지

 

진짜 죽은 상태는 아니나, 내 삶에서 나 자신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잊은 사람들이 이런 형태로 보인다고 한다. 이 신비주의자들은 평화로운 노래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게 도와준다.

 


 

조의 지금 상태는 병실에 누워있는 상태. 이를 보고 흥분한 조는 얼떨결에 22와 그 공간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조의 몸에는 22의 영혼이, 조를 치유해주러 온 고양이 몸에 조의 영혼이 들어가게 된다.

조와 22는 신비주의자인 문윈드를 만나 나중에 영혼을 바꿔달라고 얘기하고, 약속을 한다. 그동안 조는 자신이 된 22에게 머리를 잘라야한다며, 멋진 수트를 입어야 한다고 했다. 7시에 있을 재즈공연을 위해서다.

 

 

그러나 직접 인간의 몸으로 살아 본 22는 영혼에선 느낄 수 없었던 피자의 맛도 직접 느끼고, 조의 제자에게 멋진 연주도 듣고, 지하철에서 멋있게 버스킹 연주도 들었다. 또, 미용사와 재즈 얘기만 했지만 미용사의 인생 얘기도 들으며 새삼 새로운 관계도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던 어머니와 재즈 뮤지션의 길을 추구하던 조 사이의 갈등을 풀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네이버 웹툰인 <걸어서 30분>이 생각났다.

 

주인공인 성은이는 미술을 하고 싶지만, 어머니는 예술계는 재능이 있어야하며 있더라도 성공하기가 힘들다며 딸이 미술하는 것을 반대한다. 성은이는 '엄마는 내가 미술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엄마는 내가 미술하는 걸 싫어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마도 과거엔 문학소녀였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예술계로 진로를 선택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깨달았기에 조바심에 성은이에게 미술에 너무 전념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던 것이다. 딸은 좀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미술을 취미로만 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조와 그의 어머니도 그랬다. 조의 아버지도 한평생 재즈만을 좋아하시다 돈벌이를 크게 하지도 못한 채 돌아가셨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수선집을 운영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남편이 재즈를 하는 게 싫었던 게 아니다. 다만 현실은 꿈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조가 아버지처럼 그런 고생을 하지 않기 위해 걱정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22가 조의 속마음을 모두 말해버렸고, 그의 어머니도 재즈에 대한 조의 열정을 알게 되고,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조도, 22도 삶의 의미를 점점 알아차렸다.

결정적으로, 재즈 클럽 밖에서 앉아있던 22는, 자신의 손 위에 떨어지는 단풍씨앗을 보고 자신의 불꽃을 찾는다.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알아버린 22는 조의 몸으로 도망치다가 결국 다시 유 세미나로 들어가버리게 된다. 사망자의 숫자가 맞지 않자, 이를 알아내고자한 유 세미나의 테리가 지구로 들어와 조와 22를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22가 불꽃을 찾자, 지구 통행권이 만들어진다. 22는 망설이지만, 조가 얼마나 재즈 공연을 원했는지 깨달았고 자신은 이미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 익숙해져있기에 체념하고 돌아선다.

그렇게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 조.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다. 그렇게 자신이 꿈꿔왔던 날을 실제로 이루게 된 조. 그러나 마음이 복잡하다.

 

 

평생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상상하던 기분과 좀 달라서요.

젊은 물고기가 있었는데 나이 든 물고기에게 헤엄쳐 가 물었지.
"바다라고 하는 걸 찾는데요."
"바다?"
나이든 물고기가 말했어.
"여기가 바다야."

젊은 물고기는 말했지.
"여기? 이건 그냥 물인데,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

 

내가 상상해왔던 것과 현실은 다르다. 이룬 후에의 삶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뭔가 내 마음에 강한 자극이 들어올 것 같았는데, 평범하다. 꿈을 이루면 뭐든지 행복할 것 같았는데... 그 전의 삶처럼 짜증내고, 우울하고, 때론 웃고... 똑같다. 그렇게 또 꿈을 이룬 삶에 익숙해진다. 어쩌면 꿈은 꿈으로만 두어야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이 대목은 마음으로는 알겠는데, 직접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다. 꿈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 꿈을 이루고 나서의 삶도 똑같다 등등.. 여러 의미가 내포된 부분인 것 같다. 정말 좋은 대사.


뭔가 깨달은 조는 그날 밤, 피아노를 치다가 무아지경의 상태로 빠져든다. 육체와 영혼 사이의 공간에서, 신비주의자들이 있는 공간에 오게 된 조.그곳에서 문윈드와 22를 찾는다. 이미 삶의 이유를 잊은 채 방황하고 있는 22. 조는 다시 22에게 지구통행권을 건네준다. 나는 이미 한번 살아봤으니 괜찮다며.

 

 

22가 자기 마음대로 들었던 내용 조가 말했던 진짜 내용
조 : 집에 가야지, 이 냄새나는 행성 빨리 떠나고 싶지? 지구는 어땠어?

22: 늘 시시해보였는데...
사실 내가 잘못된 게 아닐까 늘 걱정이었거든
인생을 살 자격 없을까봐
그런데 네가 삶의 목적과 열정을 보여준 거야
내 불꽃은 하늘 보기나 걷기일지도 몰라, 나 잘 걷잖아

조 :그건 목적이 아냐, 22. 그건 그냥 사는거지
하지만 '유 세미나'에 돌아가면 최선을 다해 노력해봐
조 :준비됐어? 살아 볼 준비

22 : 무서워, 조. 난 자격없어. 불꽃도 못 찾은 걸

조 : 아니 찾았어. 불꽃은 목적이 아냐. 인생을 살 준비가 되면 마지막 칸은 채워져. 게다가 넌 재즈하는 거 진짜 잘하거든

 

22는 진짜 삶을 살기 전,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자꾸만 지구를 역겹다고만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부정해왔다. 그래서 조가 한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듣지 않았다.

22는 조가 준 지구통행권을 받고 지구로 떠났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지구통행권을 준 셈이 됐다.) 조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러자 뒤에서 나타난 제리. 유 세미나에 있던 제리들은 자신들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일만 해왔지, 영감을 받은 적은 없었다며 조와 22에게 큰 영감을 받아서 조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한다.

 

​제리 : 이제 뭘 할 건가요?
조 : 글쎄요.

 

삶에서 무언가를 위해 달리기 보다는, 물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편안한 삶을 살고자 마음 먹은 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을 정하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 꿈을 미리 정하는 것이 인생의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좋은 영향도 있다.

하지만 난 어느샌가부터 그 장래희망이 정말 좋은 영향만 있는 걸까?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을 정해버리면, 편협한 사고만 갖게 되어 다른 쪽은 생각하지도 못할 수도 있고 만약에 실패라도 하게 된다면 동기가 사라져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난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 것 같은데,

 

이 큰 지구에 태어났으면, 세상에 내 이름 하나 정돈 떨쳐야 하는 것 아닌가?

스티브 잡스는 사업가로서 대단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인성은 썩 그렇지 않다고들 말한다. 진짜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말을 한 것이 정말 목표지향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목표를 정말 본인의 힘으로만 이룬 것일까?

인생은 절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우선 나를 태어나주게 한 부모님. 아픈 나를 치료해준 의사, 간호사. 나를 가르쳐준 여러 명의 선생님. 나와 같이 논 학창시절의 친구들. 나와 함께 아이디어를 내며 함께 고생한 동료들. 함께 사랑하며 시간을 보낸 연인. 등등.

자신의 성공에서 이런 사람들이 결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내 이름을 떨쳐야겠다.'라고 한 건,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다르지만 난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름은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자기 혼자 그 명예를 모두 누려야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느 정도의 동기부여를 위해 장래희망으로 직업을 선택하거나 목표를 정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그 목표에만 절절 매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소울에서 나오는 '길 잃은 영혼'이 될 수도 있다.

나를 잊고, 목표에만 집착해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또, 목표에 집착해서 결국 그 목표를 이뤘을 땐... 내 주변에 진정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목표를 이루더라도 결코 나 혼자 이룬 것이 아닌, 내 주변 모두에 의해 이룬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만약 내가 그토록 꿈꿔온 미래를 이뤘을 때, 예상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건

 

삶은 어떤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삶의 목표는 사는 것이다. 그냥 살아가는 것.

그렇기에 22의 불꽃, 목표는 그냥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냥 살아보니 작은 소소함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느꼈던 것이다.

 

어쩌면 조에게도, 그 모두에게도 '불꽃'의 의미란

자신의 좋아하는 일, 꿈, 지향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고, 의미있다는 것이다.

 

뭔가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무의미한 게 아니다. 굳이 이루지 않아도 무의미한 게 아니다. 목표가 없어도 무의미한 게 아니다. 그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의미있는 것.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중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누군가가 "왜 사는 걸까요?" 라고 묻자,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결국 '죽음' 밖에 없다고 하셨다. '삶은 주어졌으니, 그냥 살아야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왜 존재하느냐 하는 것은 망상에 속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은 존재하기 때문에 '왜' 라는 생각을 한다.

존재는 있는 거에요. 주어진 거에요.

'삶은 왜 사느냐'가 아니에요.

존재는 주어진 건데,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한다.

 

그렇다. 삶은 주어졌기에 그냥 사는 것이다.

어떤 원대한 목표를 이루든, 이루지 않든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것.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것이라는 걸 자각하게 되면,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어떻게 살아야할 지가 중요한 것. 이미 삶은 어떻게 살든 의미있는 것이기에

어떤 방법으로 내 의식주만 잘 해결하고, 괴로움 없이 자유롭게만 살면 된다.

 

 

22가 아버지와 손을 잡고 가는 자녀를 발견했던 것처럼,

노상 카페에 앉아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발견했던 것처럼,

굴러가는 단풍잎처럼, 손바닥에 떨어진 작은 단풍씨앗처럼.

소소하고 작은 것들조차 소중해지는 삶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