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스윗하트에서 미스 아메리카나가 되기까지

by 솔립기록 2021. 10. 8.

 

 

“좋은 사람이 되어라.” “착한 아이는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르게 해선 안 돼.”

 

 

 

13살부터 테일러 스위프트가 갖고 있었던 신념이다. 그것이 옳다고만 생각했다. 테일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노력에 대한 칭찬은 그녀가 더 도약할 수 있게 만들었다. 때문에 그녀는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기 위해 살아왔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고, 그것을 통해서만 기쁨과 성취를 느끼게 되면 나쁜 일 하나로 인해 그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어요.”

 

그녀의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계기는 2009년 VMA 시상식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당시 로 베스트 뮤직비디오상을 받은 테일러 스위프트. 그녀가 수상소감을 하던 도중, 갑자기 카니예 웨스트가 무대에 난입했다. 그리고는 “하지만 비욘세의 비디오가 최고로 멋졌다고요!”라고 말했다. 카니예가 떠나간 무대 위엔 함성이 아닌 야유가 가득했고, 테일러는 그 비난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유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 일은 그녀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nice girl”이 되려는 신념은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았다. 카니예의 돌발행동에 대해 그를 비난하지 않았고, 논란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2009년 VMA에서 테일러의 수상소감 무대에 난입한 카니예 / 논란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은 테일러

 

그토록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결과, 그녀는 발매하는 앨범마다 신기록을 세웠다. 신기록이 쌓이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무거운 부담감이 쌓였다. 그녀는 '아메리칸 스윗하트'란 달콤한 왕관을 썼지만 그녀의 인생은 더욱 쓰디써져만 갔다.

7집 리드싱글 <me!>의 1절을 마무리하자, 프로듀서는 “이제 쉬어도 괜찮아요.”라고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안 쉬어도 돼요. 잘 되고 있다는 뜻이에요.”였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새로운 것을 들고 나올 때, 항상 이전의 것보다 훨씬 좋아야 한다는 기대를 품어요.”

 

테일러는 자신을 혹사시키며 이전의 앨범보다 더 성과가 좋아야 한다는 압박을 머리에 이고 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왕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고, 그녀의 모든 것은 언론의 먹잇감이 되었다. 2016년, 2009년에 테일러를 당황케 한 카니예 웨스트가 란 곡으로 그녀를 희롱했다. 그의 가사에는 Se*, Bit**의 욕설이 담겨 있었다. 카니예는 테일러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했지만, 테일러는 허락한 적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얼마 뒤, 카니예의 부인인 킴 카다시안이 스냅챗에 당시 통화 영상을 게시함으로써 테일러의 평판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바로 테일러가 그 가사를 허락하는 내용이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테일러는 “B-word는 영상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 단어는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가사 한 줄에 모욕감을 느꼈다는 건 거짓말 같아요. 희생양이 될 기회를 본 거에요. 모두가 자기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겠죠.”라며 그녀를 비꼬았다. (다큐멘터리는 2020년 1월에 개봉해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2020년 3월에 통화의 전체 영상이 공개되면서 테일러가 그 가사에 대해 허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데뷔 후 2년 간격으로 앨범을 내던 테일러는 이 사건으로 인해 1년을 더 쉬게 되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불안전하니까 사람들의 박수 소리로 우리의 모자란 모습을 가리려 하는 거예요. 그걸 15년 동안이나 해왔는데, 이제는 너무 피곤해요.”

 

그리곤 테일러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냥 더는 사랑해 주지 않죠.”

 

깨달음을 얻은 테일러는 공백기 동안 처음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6집 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울음을 터뜨린 테일러 / <reputation> 콘서트

 

휴식이 커다란 심경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던 걸까? 데뷔 후 전혀 정치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던 테일러는 테네시주의 상원의원으로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글을 게시했다. 테일러가 정치에 관해 침묵했던 이유는 ‘착한 아이’란 신념과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컨트리 음악계의 불문율 때문이었다. 그래서 SNS에 게시하기 전, 테일러의 측근은 크나큰 반대를 했다. 그녀의 커리어에 지장이 생길 수 있을뿐더러 안전에도 위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출마했던 공화당 의원은 자신도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폭력방지법의 재승인과 동성애자 결혼법에 둘 다 반대를 했다. 테일러는 그 의원의 행보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그녀의 영향력을 끼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정치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목소리도 냈다. 몇 년 전, 한 DJ가 테일러를 성추행한 사진이 찍혔다. 그 사건으로 해고를 당하자 DJ가 테일러를 상대로 몇 백만 달러의 소송을 했다. 그에 대해 테일러는 1달러 맞고소를 진행했다. (돈 때문에 맞고소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기에 일부러 1달러를 걸었다. "소송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다. 성범죄로 고통 받는 여성들을 대변하고 싶다." 라고 말했으며, 승소 후 거액을 성범죄 피해자 단체에 기부했다.)

 

정치적인 신념을 드러내지 않은 테일러 / 정치적 발언을 SNS에 게시할 때의 테일러

 

테일러는 법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질문 몇 가지를 받았다.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죠?”, “왜 더 빨리 반응하지 않았죠?”, “왜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죠?”

 

그녀는 다행히 사진이란 증거와 7명의 목격자가 있었기에 승소할 수 있었지만, 만약에 아무도 그 상황을 보지 못했고 어떠한 증거도 없었더라면 그녀는 승소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진실을 말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아무도 못 본 상태에서 강간을 당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또한 법정에서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해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치욕적이었다. 테일러는 이런 일이 비단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절대 아니며, 모든 여성이 이런 일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테일러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또다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성으로서 겪는 불평등을 노래하는 <The Man>을 7집에 실었다.

 

 

I'm so sick of running as fast I can

최대한 빨리 달리는 것도 이젠 지쳤어.

Wondering if I'd get there quicker if I was a man

내가 남자였다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텐데.

<Taylor Swift - The Man>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는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7집 의 수록곡에는 가 있다. 이 곡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 상황을 남녀 사이에 빗댄 곡이다. '미스 아메리카나'는 테일러 본인이고, '가슴이 부서진 남자'는 민주당을 뜻한다.

 

 

We're so sad we paint the town blue.

우리는 너무 슬펐고, 도시를 파란색으로 칠했어.

Taylor Swift - Miss Americana & The Heartbreak Prince

 

 

여기서 말하는 ‘blue’는 우울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민주당을 나타내는 파란색을 뜻하기도 한다. 슬프지만 파랗게 물들자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Boys will be boys then where are the wise men.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뭐, 현명한 남자들은 어디에 있는 건데?

Taylor Swift - Miss Americana & The Heartbreak Prince

 

 

현 정치판의 대다수가 남자란 사실과 ‘남자들은 원래 다 개구쟁이고, 다 그렇지 뭐.’라는 유명한 말을 비판하며 정치권의 남자 중에 제대로 된 정치가가 있느냐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그녀가 지지했던 민주당의 힐러리뿐만 아니라 여성 정치인들의 등장을 희망한다.

 

 

 

“13년 동안 나를 잘못 보여줬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지금껏 있었던 모든 일의 종착역이 이 순간이란 걸 깨닫고 보니 기분이 좋아요.”

 

 

13년 동안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지라도, 나는 그동안 그녀가 대중들에게 끼쳤던 선한 영향력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타인의 인정이 아닌, 자신의 인정이 더 중요하단 가치를 알게 된 테일러 스위프트는 앞으로의 13년 그리고 그 후에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당선 결과에 실망한 테일러 / 정치적인 발언과 관련해 대화하는 테일러

 

 

누군가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모습이

가식적이고, 꾸며진 이미지라고 한다.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

적나라한 사생활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녀는 관객을 속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모두에게 친절한 이미지'를 만들려고 마음먹었어도,

과연 14년 동안이나 대중을 속이는 사람이 있을까?

 

 

'아메리칸 스윗하트' 테일러 스위프트(3집) / '미스 아메리카나' 테일러 스위프트(9집)

 

 

아메리칸 스윗하트는

정해놓은 형식에 맞춘 아름다운 모습이라면,

 

미스 아메리카나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누군가 시키지 않았지만,

타인의 의식으로 인해 아메리칸 스윗하트로 살았다.

 

그러나 다친 만큼 성장한 그녀는

미스 아메리카나가 되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