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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고전 영화 리뷰] <티파니에서 아침을> 가난한 이들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풀어내다.

by 솔립기록 2021. 9. 30.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할리 고라이틀리든, 폴 바잭이든 둘 다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들의 비주얼과 전체적인 분위기로 그들의 슬픔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다.

그들도, 보는 관객도, 예쁜 포장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영화에서만큼은 포장지를 뜯지 않은 채 본다.

 

선물처럼,

포장지를 뜯기 전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기대감에 부풀지만 내용물은 생각보다 감동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포장지를 뜯기 전의 설렘이 행복 지수가 더 높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이 가끔은 포장지에 싸인 선물만 바라봐도 행복하다.

 

 

오드리 헵번은 고전 미인으로 유명해 익히 알고 있다. 올림머리에, H 라인의 원피스, 진주 목걸이, 우아한 담뱃대.

나는 그 이미지만 보고 굉장히 고상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의 인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정반대였다. 겉으론 엉뚱하고 허당미를 풍기지만, 속은 썩어문드러져 가는 그런 이미지다. 하지만 극 중 할리 고라이틀리는 생계를 위해서 부자들의 남자만 만나는 그런 인물이었다. 극 중 직업은 사교 모임의 파트너 역할을 하는 프리랜서라고 한다.

솔직히 그렇게 대단한 스토리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뭔가 여운이 남는 영화다. 이들의 외전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서로 비슷한 처지의 남녀가 만나서 같은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서로 둘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할리는 가난이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그 확인을 피하고 있었다.

둘은 가난한 사랑을 하겠지만, 마음은 충만한 사랑을 할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경제적으로 그리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함으로써 어떤 또 다른 행복을 얻고, 어떤 또 다른 슬픔을 겪을지.

 

 

할리는 버려져 있는 고양이를 데려와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고양이에겐 이름이 없었다.

자신의 것을 제대로 갖기 전에 고양이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고양이의 모습은 할리와 같은 모습이다.

겉은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갖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뿐더러

이제는 자신이 ‘할리 고라이틀리’인지, ‘룰라 매이’인지도 모르겠고,

그 둘도 아닌 그저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 오는 날, 할리가 고양이를 버림으로써 할리는 다시 14살의 알을 훔치던 그 시궁창 같은 과거로 돌아갔다.

그리고 할리가 다시 빗속에서 고양이를 찾아서 안아주었을 때는 그 시궁창 같은 곳에서 자신을 구출했다.

즉, 할리가 진정 누구인지 깨달음으로써,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은 것이다.

폴이 얘기했던 것처럼, 할리는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 길들지 않는 모습을 자청하지만 할리는 그 누구보다 방황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자신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가난이라는 핑계를 대며 ‘우리’에 자신을 가두기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할리 자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자유’라는 ‘우리’에 자신을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할리가 매춘부로 나온다. 그리고 할리와 폴은 이어지지 않고, 결국 남미의 부호, 호세와 결혼해서 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원작 소설이 뭔가 더 현실적임을 보여준다.

영화가 1960년대라서 그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할리가 돈이 없어서 부호와 결혼한다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꿈꾸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건 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폴도 가난한 작가였기에 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2-E와 그런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다. 마냥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 사회나 인간의 문제라고 보인다.

영화 초반에서 할리는 ‘속이 빨개지고 그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택시를 타고 티파니에 가서 그 마음을 푼다.’라고 한다. 할리는 직업 특성상 ‘이른 아침에 이브닝드레스 차림’으로 퇴근을 했고, 밤새 파티 걸로 날을 새고, 속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래서 빨간 마음을 하늘색의 티파니를 보며 마음을 달래야 했던 것이다. (유튜브 댓글 참고)

 

 

난 이 장면이 참 슬펐다.

할리 “난 당신이 돈만 있으면 당신하고 당장 결혼할 거예요. 내가 돈이 있다면 나랑 결혼하겠어요?”

“당장요.”

할리 “우리 둘 다 부자가 아닌 게 다행이네요. 그렇죠?”

“그래요.”

그리고 할리가 폴에게 짧은 입맞춤을 하고, 그의 눈을 바라본다.

흔들리는 할리의 눈 속에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그 현실과 자신의 방황하는 마음에 부딪혀 그를 받아줄 수 없음이 느껴진다.

그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다는 이유로 억지로 '가난'이라는 핑계를 댄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할리도 폴을 분명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둘은 장난스럽지만 의미가 담겨있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언뜻 확인했다. 할리도 자신에게 순수한 목적으로 다가오는 폴이 싫지 않다. 하지만 할리는 14살 때 결혼을 했고, 돈 때문에 다사다난한 생활을 했고, 매번 옆의 남자가 바뀌어왔다. 그런 인생을 반복했기에 폴도 자신을 곧 떠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를 밀어냈던 것 같다.

할리는 호세에게 정식적으로 청혼은 받지 않았다고 하자, 폴은 청혼할 때는 네 단어만 필요하면 된다고 한다.

“Will, You, Marry, Me.”라며. 진지하고 정중한 목소리에, 폴이 할리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말로 들렸다.

뜬금없이 난 영화를 보면서 할리가 “Yes.”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댓글에서 보니 폴의 눈동자 색과 티파니의 시그니처 색이 같다고 한다. 민트색 느낌이 나는 하늘색. 영화의 첫 장면에서 할리가 길거리에 서서 아침 식사를 하며 진열대 안쪽의 티파니 쥬얼리를 본다.

그토록 할리가 갖고 싶었던 티파니 쥬얼리도 아닌, 6.75달러의 순은 다이얼 핀도 아닌,

그나마 티파니에서 이니셜을 새긴 가난한 쇠반지를, 자신의 손가락에 끼웠다.

우연인지,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할리가 그토록 원했던 티파니가 곧 하늘색 눈동자의 폴이었다.

유튜브 댓글에서 보니, 오드리 헵번이 부른 희대의 명곡 'Moon River'는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고 한다.

달빛이 흐르는 강을 건너서 당신(폴)이 어디로 가든, 당신을 따라가겠다고 말한다. 방랑자 두 명(할리와 폴)이 세상을 보려 길을 떠나고, 같은 무지개를 쫓고 있다고 한다.

이 노래의 내용처럼 할리는 스스로 만든 우리를 탈출해서 폴과 함께 사랑을 찾으러 긴 여정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