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난 후의 해석만을 담았습니다.
이 영화는 1958년 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세련된 연출이 돋보였다.
영화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내가 인상 깊었던 부분에 대해서 얘기해본다.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으니 너그럽게 생각해주세요!)
오프닝에서 빨간색 조명과 확대된 눈으로 공포감을 느끼게 해줬지만 동시에 빨려 들어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제목인 ‘현기증’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존의 악몽 부분에서는 여러 색깔이 교차하고,
갑자기 뒷배경이 바뀌고, 존의 얼굴만 나와서 마구 움직였다.
전체적으로 정신 사나운 연출이었다.
배경음악도 더해져 오싹함까지 느껴졌다.
마치 계속 이 영상을 보면 내가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줌인/트랙아웃 기법’은 유명하다.
이 영화에서 최초로 하게 된 기법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렌즈의 줌을 밖으로 당기고, 카메라를 안으로 밀면서 촬영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라이프 온 마스>에서는 달리나 레일을 이용해서 카메라 본체는 뒤로 가는데,
카메라로 줌인을 하는 형태로 찍었다고 한다.
매들린의 모습으로 나타난 쥬디와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360도로 카메라가 회전하면서 배경이 바뀌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실제론 쥬디와 사랑을 하고 있지만,
존의 입장에서는 쥬디가 아니라 매들린과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았다.
(방구석 1열에서는 그 배경이 과거라서 존의 과거를 표현한 장면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다가 이상했던 부분이 있었다. 엘스터였다.
아내인 매들린과 존이 밤에 함께 있었고,
새벽에 매들린이 존을 찾아가고,
매들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울거나 분노하지도 않던 엘스터였다.
사실은 전부 의도되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존과 쥬디가 교회 앞에서 키스를 하다가 쥬디가 눈을 옆쪽으로 뜬다.
그 이유는 작전을 실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눈을 한 것이었다.
<현기증>을 다시 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일 것 같다.
쥬디가 자존심이 상해가며 매들린의 모습을 따라 했던 건,
정말로 존을 사랑했지만 애정결핍으로 그 사랑하는 표현 방법이 미숙했기 때문인 것 같다.
쥬디의 마지막에서도 존은 쥬디를 극한으로 몰아넣었지만
쥬디는 그 와중에도 존을 사랑한다며 존의 마음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쥬디는 진심으로 존을 사랑했다.
하지만 존은 쥬디를 사랑하지 않았다.
다른 방향의 마음은 언제 어긋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
지만 그 어긋남의 결과가 쥬디의 죽음이라니, 허무했다.
결국 쥬디도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돈 때문에 엘스터의 도구가 되고, 매들린 때문에 존의 도구가 되었다.
쥬디는 두 번의 죽음을 맞이했다.
첫 번째 죽음은 매들린이라는 가면에 숨겨져 있던 쥬디를 드러내고자, 그 가면을 죽이게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죽음은 가면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과 본인이 저지른 죄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었다.
첫 번째 죽음으로 다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죽음으로 끌어들인 존과의 재회.
다시 만나고자 하는 의지는 쥬디에게 있었고,
그 죄책감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아래로 뛰어든 것은 사실이나,
쥬디라는 인물이 매우 안타까웠다.
영화 내내 주체적인 삶이라고는 ‘존과 제대로 재회하기 직전의 초록색 옷을 입었을 때’뿐이었다.
후반부에서 쥬디가 존의 요구에 따라 매들린처럼 입고 나왔을 때,
초록빛의 흐릿한 빛 때문에 쥬디가 매들린처럼 보였다.
환상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생각엔 이것도 존의 눈에서 보이는 것을 표현한 것 같다.
마치 죽었던 매들린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서 존은 쥬디의 고통에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무작정 끌고 올라간다.
그러다가 엘스터와 쥬디에 대한 극심한 분노로 고소공포증과 현기증을 이겨낸다.
결국 존은 매들린을 그리워해서 죽은 매들린의 흔적을 찾아다녔던 게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콤플렉스를 없애고자 매들린을 찾아다녔던 게 아닐까?
존은 고소공포증과 현기증은 극복했지만, 분노를 얻었다.
그것은 또 다른 감정으로 이겨내게 될 것이다.
<현기증>이 제목인 이유는 무엇일까?
존은 동료의 죽음으로 현기증을 얻고(得), 그 현기증으로 사랑하는 매들린을 잃는다(失).
그리고 쥬디를 통해 분노로 현기증을 극복(得)하지만, 쥬디를 잃는다(失).
또 교회의 종탑에서 떨어진 쥬디를 내려다보며 고소공포증과 현기증을 완전히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
매들린과 쥬디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모습을 현기증으로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이 현기증은 두 사람의 죽음으로 해소된다.
존은 현기증 극복을 원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사랑했다고 착각했던 두 사람을 잃음으로써 현기증을 극복했다.
잃고(失), 얻고(得)를 반복 속의 혼란스러움을
‘현기증’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리뷰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 영화 리뷰] 우리도 어느 면에선 싸이코가 아닐까?,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 (0) | 2021.10.05 |
---|---|
[고전 애니 리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석 - 알고 보면 풍자가 가득한 동화 (0) | 2021.10.04 |
[고전 영화 리뷰] <티파니에서 아침을> 가난한 이들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풀어내다. (0) | 2021.09.30 |
[지브리 애니 리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 🎬 진짜 '나'를 찾기 위한 행방불명 (0) | 2021.09.28 |
[영화 리뷰] 레전드 명작 영화 <트루먼쇼> 리뷰/해석/줄거리 (0) | 2021.09.25 |